슬로우푸드(slow food)운동의 현대적 의의

저자
윤명중
출판년도
2003-10-22
목차
1. 슬로우푸드 선언산업혁명 이후 발전을거듭해온 근대 사회는 기계를 발명하여 생활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기계문명의 스피드 속에서 인간은 패스트푸드(fast food)를 먹게되었으며, 또 패스트푸드로 인하여 인간은 멸종의 위기를 맞고있다.조용한 생활을 영위하는것, 이것이 보편화된 패스트라이프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패스트라이프의 보편화를 효율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즐거움이야말로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이러한 반격은 슬로우푸드식탁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향토적인 맛과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재발견하고, 인간생활을 퇴화시키고 있는 패스트 푸드 물결을 타파해 나가야한다는 슬로우푸드 운동은 1986년에 이태리에서 미국계 패스트푸드점의 개점에 반대하는 운동을 계기로 출발했다. 그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하는차원을 넘어서 패스트푸드로 상징되는 '효율지상주의' 사회에 대항하여 비판과 대항사상, 그리고 행동을 제창하는 문화운동으로 성립된 것이다.처음에는 효율지상주의의식품산업과 식문화에 대항해서 전통적인 식품제조기술과 그 식품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즐거움을 지키는 운동으로 전개되었으나 주목할 것은 문화와문명의 발전에 대하여 본질적인 개선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운동의 심벌마크인 '달팽이'가 그 성격을 잘 표현하고있다그로부터 3년 후인1989년에는 15개국이 모여서 국제적 운동으로 발전되었고, 그 후에도 순조롭게 공감대를 넓혀 나가서 일본과 패스트푸드의 원산지인 미국을 포함한세계 40개국 이상이 조용하고도 착실한 '식문화복권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형의 24시간 동안 쉬지 않는 산만한'패스트라이프'를 거부하고 생명의 리듬을 존중하는 여유 있고 느긋한 '슬로우푸드 라이프'를 되찾자고 하는 호소가 공감의 폭을 세계로넓혀 나가고 있다.슬로우푸드 운동은 미국중심으로 추진되어온 글로벌리제이션에 대한 대항사상과 행동제기가 식품과 농업, 지역과 환경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현대문명에 내재하는 '스피드·생산성·효율만능주의'가 인간생활의 근저를 변화시켜 환경과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는 인식에 서서 생명의 원점인'식품'을 기점으로 슬로우푸드를 제기하여 변혁운동이 진행되고 있다.이 운동이 목표로내세우는 내용은 즐길 권리와 생명 리듬의 존중, 식문화의 탐구와 미적 능력 향상, 어린 시절부터의 미각과 후각 개발과 교육, 식품과 농업의문화적 유산과 전통 보호, 자연과 조화한 질 높은 농산물 보급, 지역특산품과 소생산자 보호, 생활주체로서의 소비자의 권리, '인간과 자연','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개혁 등 폭넓은 영역을 커버하면서 식품을 축으로 하여 그 활동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2. 식문화·자연의 다양성복권이 운동의 구체적인활동은 다음과 같다. 2년마다 건전한 미각(All of Taste)이라고 하는 대규모의 식품 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박람회가아니라 식품의 위기를 자각하여 식품의 근원을 인식하고 식문화의 복권으로 사회와 문명의 바람직한 자세를 전망하는 것이다. 식품은 지역과 풍토와결부된 것으로 재배기술과 품종, 가공과 조리, 보존과 먹는 방법, 향연의 작법까지를 포함하여 역사와 문화의 결정이다.식문화와 관련된 또하나의 문제로 식료자원의 다양성 상실을 들 수 있다. 현재 우리들이 먹고 있는 식품의 9할이 겨우 30종의 식물을 사용하여 만들어지고 있다는현실이다. 이제까지 세계 각지에서 약 7,000여 종의 재배식물이 식료자원으로서 인류의 손에 가꾸어져 왔다. 이러한 것이 최근 세계화의 영향으로다양성이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없어져 가는 식품의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1996년부터 '절멸위기' 식품과 제조기술을 정리하는 작업이시작되었다.그 지역의 맛을 상실하게하는 규제와 규격화·획일화에 대항하여 EU, WTO, FAO 등에서는 식품제조의 공업적 표준화·규격화, 고도 위생관리, 유통 근대화 등은 대규모산업화를 촉진하는 것으로서 대기업을 이롭게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해서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바이오 식품에 대해서도 슬로우푸드에 대치되는것으로 정의하고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는 윤리, 법제도, 환경, 건강 면에서 문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획일화에 의하여 잃어버린 것은 식품만이아니고 건강, 농촌사회 안정, 삶의 방식, 문화, 전통, 풍경, 자연 등 생활 전반에 걸쳐있다.이와 같은 흥미 깊은운동과 관련된 또 하나의 운동으로 1999년에 이태리의 토스카나 그레베지방에서 발생되어 확산된 슬로우시티(slow city) 운동이 있다.2000년 7월 'slow is better' 사상에 찬동한 다른 이태리 소도시 30개소가 '슬로우시티'를 선언했다. 슬로우시티가 되는 자격은간단치 않다. 전통적인 마을풍경, 풍부한 문화, 조리, 장인기술이 전승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화려한 네온광고 금지, 도심지로의 자동차진입금지, 자전거 전용도로 보급, 지역의 소규모 식당, 수목·공원·광장 보호, 소음규제 등 세부적인 사항에 걸쳐서 시장의 선언이 있어야만 한다.3. 위기의 배경:다양성의상실슬로우푸드 운동이 확산된배경에는 인간 사회와 이를 둘러싼 세계가 점차 획일화되고, 지역적인 개성과 다양성을 급속하게 잃어가고 있는 현실이 있다. 우선 자연계에서일어나고 있는 심각한 상황부터 살펴보자.글로벌 시대를 맞은 지금지구온난화 문제를 시작으로 인류는 자원이나 환경의 한계를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생물다양성 문제로서 지구상의2할에 가까운 '생물의 종'이 멸종하는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리적, 화학적인 환경파괴 현상과는 달리 인간의 생명을 직접 위협하는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인류 자신의 생존기반 자체를 붕괴시키는 것으로 이어진다.지구상의 생물의 종은현재 알고 있는 것으로는 175만종 정도이지만 미지의 생물의 종을 포함하면 적어도 10배 이상의 종이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UN환경계획(UNEP)의 예측으로는 세계의 많은 생물종이 절멸의 위기에 처해있고, 21세기 전반에 지구상 전체 생물의 4분의 1이 멸종한다고한다. 일본에서도 척추동물의 22%, 식물의 16%가 멸종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주변에는 옛날부터 자주 보아 온 식물 중에서 지금은 소멸한것이 다수 있다.이와 비슷한 사태로인류의 생존에 직접 관계되는 다양성 파괴로는 식료자원의 다양성 파괴를 들 수 있다. 50만종에 달하는 고등식물 가운데서 인류와 오랫동안 함께 한약 7,000여 종 정도의 재배용 식물이 작물로서의 이용가치가 있다. 그 가운데 생산성과 이용가치가 높은 것만 선발되고 나머지는 도태되어오늘날에는 약 30종의 작물에 인류의 전체 칼로리 섭취량의 90%를 의존할 정도로 집중화되고 있다. 그 대다수가 3대 메이저 곡물(옥수수, 쌀,밀)에 의존하고 있다, 대가축으로는 가축화된 14종 가운데 메이저 5종(소, 양, 산양, 돼지, 말)이 대부분을차지한다.세계 최대의 식량생산국인미국에서 일어난 것은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과 함께 그 농산물의 품종 단일화가 급속히 진행되었고, 유전적 기반을 매우 좁혀놓은 것이다. 이와 같은극단적인 품종획일화는 상업화가 보다 더 진전된 옥수수나 밀, 감자 등에서 더욱 현저하고, 개량품종 이른바 슈퍼 품종만이 전체 작물의 과반수이상을 차지하는 모노컬쳐(단일재배)화가 진행된 것이다. 1903년 당시 미국 농업부(USDA)에 등록된 상업작물 품종의 97%가 이미 소멸되고있다고 한다.이러한 단순화가 의미하는것은 생산량의 향상과 단지 보기 좋다고 하는 외견상의 화려함과는 정반대로 극히 위험한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새로운 리스크는생산성의 비약적인 향상의 그늘에서 극히 제한된 생물종과 특히 그 가운데 특정 슈퍼품종에 식량생산을 집중적으로 의존하는 것에서 온다. 세계 최대의생산량과 생산성을 자랑하는 미국 옥수수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전과 비교하면 단위면적당 수확량은 1980년대에는 약 5배까지 향상되었다.그렇지만 순조로운생산확대의 길에 큰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 1970년대에 일어났다. 70%가 근친교배계인 5개의 옥수수 품종으로 유전적 균일성이 확대된 지역에서모노컬쳐화가 확산되었는데 곰팡이병이 일거에 만연했다. 그 결과 15%나 생산량이 줄어 가격 폭등을 가져왔다. 이러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것은 어렵게 찾아낸 저항성을 가진 품종의 도입이었다. 저항성 품종은 소위 전통적 농법을 하고 있던 농민의 다양한 재래종이나 원산국에서 원시적으로생육하고 있던 야생종에서 발견되었다.4. 식품·농업의 획일화전망현재 선진국에서는 바이오관련기업과 국가의 공적연구기관이 종자은행(유전자뱅크)을 설치하여 다양한 유전자자원 보존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종자회사와선진제국의 연구기관에 종자(유전자자원)가 집적되고 있는 반면에 원산국이나 야생종을 보유해온 개도국에서는 어렵게 전통적으로 보존·육성해 온 원종과야생종은 물론 재래품종조차도 급속하게 잃어버리고 있다.개발품종의 특권적인권리상황은 농민이 종자회사로부터 매년 새로운 종자를 구입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고, 세계규모의 격차와 종속구조를 만들었다. 다양한 유전자자원을선진공업제국은 종자은행을 통해 확보하고 우수한 기술로 품종개량과 특허를 확대하여 왔다. 세계화가 진전되고 재래품종과 전통적인 농업·농촌이붕괴·소멸되어 가고 있는 가운데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기술우위의 조류에 식품과 농업의 토대가 국제비즈니스의 제물로 희생되고 있는것이다.미국에서는패스트푸드업계가 번성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 미국 국민의 식탁이 기업의 주방에 종속되었느냐 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패스트푸드가 세계를독식한다'(Eric Schlosser, Fast Food Nation, 2001년)라는 한권의 책에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1세대 이전까지는 식비의 4분의3이 가정에서 식료비로 충당되고 있었으나 지금은 약 2분의 1이 패스트푸드 등 외식비로 지출되고 있다. 이러한 기업집중화 현상도 급속하게진전되고 있다.우리들의 식탁은 매우풍성해졌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는 집중화, 균일화가 놀라운 스피드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약 60여개의 대기업이 세계식품가공의 약 70%를, 약 20여 개의 기업이 세계의 농산물 거래량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곡물에서 커피·홍차, 바나나 그리고 광물자원에이르기까지 그 무역의 60-80%가 3∼5개 정도의 거대 다국적기업에 의해 거래되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풍요로운 식탁으로 선택의폭이 확대된 반면에 외견상 식탁의 다양화는 반대로 국제분업화가 진전되고 획일적인 단일경작과 거대자본에 의한 품종과 재배관리, 가공기술과식품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국제적인 유통망의 획일화·집중화, 즉 심각한 다양성 상실이 세계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식료·농업시스템이 이른바 저가 경쟁 하에서 세계의 수퍼마켓화 되어가고 있는 사태, 아니면 획일화라고 하는 의미에서 식품의 맥도널도화 현상이생겨도 과연 좋은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한편 생산성의 향상과저가격을 실현했다는 것이 경제논리에서 보면 효율화가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환경과 인간사회 시스템을 종합적으로 감안한다면가격이라는 척도와 일면적인 효율성의 향상만으로는 환경·사회·문화면 등 수량화 될 수 없는 거대한 모순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그리고 식품과 농업이라는대지와 자연에 연계된 지역적인 다양성에 부응한 문화적인 발전의 원동력을 상실해 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농산촌의 생활기반과지역사회 붕괴, 비즈니스만을 생각하는 현상의 초래, 지역과 풍토에 뿌리내려온 식문화와 사회·문화의 다양성, 그리고 유전자를 포함한 자연자원의다양성까지도 소멸되어 가고 있는 것이 이른 바 글로벌화에 의해 나타나고 있는 현상인 것이다.5. 대항 문화운동으로서의지역전개이러한 관점에서 보면슬로우푸드 운동은 대항문화의 형성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즉, 최근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지역특산품 중시, 농민시장, 유기농업에 의한연대, 직거래운동(생산과 소비 연대강화) 등 지역·문화·환경의 다양성을 유지·복권하는 움직임과 궤도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종래의풍부함이라는 가치관의 전환, 생활전체의 재구축, 노동만이 아닌 가정생활에서의 여가, 취미·교양, 다양한 교류, 지적·문화적 창조활동까지,대지·자연을 함께 묶은 생명활동의 종합적인 의미를 부활하여 새로운 사회문화를 창조하는 운동이다.이러한 움직임은 현재유럽 각국, 특히 프랑스 등에서 활발하다. 지역의 개성적 발전을 촉진하는 지리적 특성, 전통 문화 등의 특별표시, 라벨링 제도와 연계하여지역진흥정책에 포함하여 강화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와인이나 치즈 등 지리적 표시와 전통식품의 보호·육성을 지역정책으로서 명칭보호라는 형태로일찍부터 추진해 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표시제도는 농업정책의 한 분야로서 지역개발·지역농업 진흥을 위한 시책과 연계하여 발전시키고, 또한명칭에 대해서도 법적 보호에 머물지 않고 농업생산자의 집단조직화·지역진흥에까지 연계시키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슬루우푸드 운동의 확산은앞으로 계속해서 그 진폭을 넓혀 나갈 것이다. 그 진폭의 뒤편에서 과연 우리들은 어떠한 식문화와 생활양식을 창출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을가져볼 필요가 있다.자료:「農業と經濟」2003年1月號에서(윤명중yoonmj@maf.go.kr 02-500-1844 농림부 식품산업과)
발행처
KREI
발간물 유형
KREI 논문
URI
http://repository.krei.re.kr/handle/2018.oak/17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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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간행물 > 세계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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