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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박석두-
dc.contributor.other이두순-
dc.date.accessioned2018-11-15T07:54:53Z-
dc.date.available2018-11-15T07:54:53Z-
dc.date.issued1995-08-
dc.identifier.otherR320-
dc.identifier.urihttp://repository.krei.re.kr/handle/2018.oak/14393-
dc.description.tableofcontents목 차 머리말 제1 장 서 론 1. 연구 목적과 의의 2. 이용 자료 3. 연구 범위와 방법 제 2 장 류씨가의 收入構造와 그 변화 1. 家計收入의 收入源과 관리방식 2. 연도별·항목별 수입의 변화 3. 수입구조 변화의 특징과 그 의미 제 3 장 농산물 상품화 및 현금 수입의 변화 1. 농산물 상품화 및 현금 수입의 推移 2. 농산물 상품화 및 현금 수입의 변화와 그 의미 제 4 장 류씨가의 소비 및 지출구조와 그 변화 1. 소비 및 지출의 관리방식 2. 양곡 소비 실태 3. 가용 현금 지출구조와 그 변화 4. 류씨가의 쇠퇴와 그 원인 제 5 장 요약 및 결론 참고문헌 (1) 류씨가의 수입 구조와 그 변화 ○ 류씨가의 수입원은 일제시기 전기간에 걸쳐 총 90두락 내외였던 전답과 55정보 가량의 임야, 그리고 ·대세 혹은 그 대신으로서의 호역을 제공받았던 가대 등이었다. ○ 류씨가의 연간 총수입은 자작 생산 벼 32~55석, 소작료 미곡 140~225두, 자작 생산이 주였던 보리 8~10석과 밀 3~4석, 밭의 소작료인 목화·백목·콩과 팥·참께·무, 55정보에 달하는 임야에서 산출되는 송추와 화목·재목 등 및 화폐 소작료로 받은 약간의 현금 등이었다. ○ 품목별 추이를 보면 미곡 수입은 1920년 이후 약간 감소, 보리는 일제 전시기에 걸쳐 별변동이 없었으며, 밀은 1930년 이후 급감, 담배는 1925년 이후 소멸, 콩은 1930년 이후 감소 추세, 화목·재목 등의 임산물 수입은 1930년대 이후 급증하는 추세였다. 현물이 주종이었던 총수입은 전반적으로 1925~30년 이후 약간 감소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2) 농산물 상품화 및 화폐 수입의 변화 ○ 화폐 수입에서 차지하는 품목별 비중의 추이를 보면 일제 전기간에 걸쳐 류씨가에서는 쌀과 임산물 판매 수입이 대종을 차지하였는데, 1930년 이전에는 미곡 판매 수입이 화폐 수입 총액의 50% 내외를 차지하였으나 1930년 이후 미가 폭락과 함께 10% 내외로 떨어진 반면, 임산물의 경우 불규칙적이긴 하나 전기간에 걸쳐 10~37%의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1935년 이후 그 비중이 점증하는 추세였다. 이외에 백목은 1920년 이전, 목화는 1935년 이후, 담배는 1920년 전후에 주요 판매품이었으나 화폐 수입 총액에서의 비중은 각기 5% 내외에 그쳤다. ○ 품목별 상품화율을 보면 판매용 미곡은 소작료로 받은 것으로서 1930년경까지는 50~89%까지 방매하였으나 1935년경부터는 24% 수준으로 떨어졌다. 보리는 1921년까지는 전량 자가소비에 충당하다 1922~37년에는 간혹 10두 내외를 판매하였으나 1938년 이후 종자용·식량용으로 구입하게 되었다. 밀은 주로 자가소비 양조용 누룩을 제조하여 그 일부를 판매하다가 1929년의 사고제조 금지조치로 재배면적이 1두락 수준으로 줄고 모두 자가소비하게 되었다. 백목은 소작료로 받아 거의 전량 판매하였으며, 1920년 이후 목화로 수납하여 그 30~50%를 판매하고 나머지는 자가소비하였다. 담배 역시 소작료로 받아 1918년 이전에는 자가소비하였으나 이후로는 전량 판매하였다. ○ 류씨가의 총수입 대비 화폐 수입의 비중이 50% 이하인 것으로 보아 류씨가는 자급자족을 우선하고 남는 농작물을 판매하면서 백목과 담배 등에 한해 판매 목적으로 수납하는 소상품 생산자적 성격을 나타내고 있으나, 자가용주의 제조 금지, 토포 생산의 소멸, 담배의 경작허가제등 일제 농정의 전개와 함께 1935년 이후에는 농가경제가 전반적으로 악화되면서 자급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3) 류씨가의 화폐 지출구조와 그 변화 ○ 연간 화폐 지출 총액은 1910년의 78원 정도에서 1914년 107원, 1920년 300여원, 1925년에 370원, 1930년에 520원 정도로 계속 늘어나다가 1935년에 350여원으로 줄어든 뒤 1940년에는 1,200여원으로 늘어났다. ○ 연간 화폐 지출액에 당시의 연평균 미가를 적용하여 미량으로 환산한다면 1925년까지는 매년 쌀 10석 내외, 1926년 이후 20석 내외, 미가 대폭락기인 1930년의 47석을 정점으로 다시 감소하여 1931년부터 1938년까지는 15석 내외였으며, 1939년에는 미가 폭등으로 8석 수준으로 급감, 1940년 이후에는 전시 인플레와 미가통제로 30석 수준으로 급증하였다. ○ 비목별로 보면 음식물비는 1910년의 25.2%에서 1914년 25.1%, 1920년 17.9%, 1925년 15.4%, 1930년 14.8%, 1935년 13.8%, 1940년 13.7%로 계속 감소되는 추세였다. 강제성 잡부금을 포함한 조세공과비의 비중은 일제 전기간에 걸쳐 화폐 지출 총액의 10%를 상회하였으며, 1925년·1930년·1935년에는 음식물비보다도 많았다. 그 외에 비중이 큰 비목은 피복 및 신발비, 주거비,관혼상제비, 교제 및 증여비 등이었다. (4) 양반 소지주가의 몰락 과정과 그 원인 ○ 연간 화폐 수입액과 지출액을 대비하면 1909~11년에 미미한 적자를 보이다가 1912~20년에는 약간씩 흑자를 기록하였으며, 1921년·1922년은 연속 다액의 적자를 나타냈다. 그 후 1923년·1924년에 약간의 흑자로 돌아섰으나 1925년부터 일제 말엽까지 계속 만성적인 적자를 나타냈다. ○ 적자폭이 커지면 류씨가에서는 계정을 구분하여 관리하였던 목조 항의 자금을 끌어썼으며, 그것도 모자라면 일부 토지를 방매하여 늘어나는 적자 및 부채를 탕감하였으나 1925년 이후에는 매년 적자가 누적됨으로써 일시적인 보전방식으로는 적자가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 만성적인 적자와 이로 인한 류씨가의 쇠락 원인으로는, ① 자급자족적 소상품 생산으로 인한 농산물 판매수입의 정체, ② 화폐 수입과 지출의 양측면에서 농가경제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상품화폐경제를 확대시킨 재정 및 농업정책, ③ 조세공과의 과다, ④ 지주가의 농업노동 기피 및 관혼상제비 과다 등 전통적 생활관습 등을 들 수 있다.-
dc.title한말 일제하 양반 소지주가의 수지변화에 관한 연구-구례류씨가의 사례--
dc.title.alternativeChanges in Small Landload's Income during late Lee Dynasty and Japanese Rule - A Case Study of-
dc.typeKREI 보고서-
dc.contributor.alternativeNamePark, Seokdoo-
dc.contributor.alternativeNameLee, Doo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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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보고서 > 연구보고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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