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쟁점과 대응

저자
이재옥
출판년도
2000-12-13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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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적기능(이재옥)



2000년 11월 15∼17일에 개최되었던 WTO 농산물협상을
위한 제4차 농업위원회 특별회의에서는 농업의 비교역적 관심사항(NTC), 혹은 농업의
다원적기능(Multifunctionality of Agriculture)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한국, 일본,
EU, 스위스, 노르웨이, 모리셔스 등 핵심 6개국을 포함하여 총 27개국이 공동으로
제출한 NTC 관련 제안서에 관한 토론이 활발히 이루어진 바 있다. 이번 회의에서
NTC 관련 제안서가 정식으로 제출되고 사상 유례가 없는 총 44개국이 토론에 참여한
결과 심지어는 수출국들까지도 NTC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차기 농산물협상에서는 UR 협상과는
달리 수출국들 못지 않게 수입국들의 논리적 대응도 만만치 않아 협상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까지 농산물협상에서 비교역적기능은 그 존재와
중요성이 인정되고 UR 농업협정문과 제20조에서도 강조되었으나, 그에 대한 주장은
개념 자체로 끝나 버리고 마는 경향이 있어 왔다. 그러나 UR협상 이후 농업의 비교역적
관심사항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좀 더 체계적이고 이론적으로 설명되는 다원적기능으로
대체되어 설명되고 있다. 농업의 비교역적 관심사항이란 무역자유화를 논의함에 있어
교역에 관한 사항 이외에 비교역적 관심사항도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파생된 말이다.
반면 농업의 다원적기능이란 농업의 생산활동 과정에서 외부효과이자 공공재의 성격을
갖는 결합생산물의 총칭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경제학적으로 농업 생산활동의 긍정적
외부효과, 즉 편익이 내부화(internalization)되지 못하고 공공재의 경우 무임승차(free
rider)의 문제로 인해 시장실패의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농업에 대한 정부의 개입과 보조가 불가피하다는 논리이다. 다만 NTC는 이미 농업협정문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이 된 협상용어인 반면 농업의 다원적기능은 협상에서 공인되지 않은
관계로 수입국들은 NTC를 다원적기능을 표현하는 용어로서 쓰고 있다.
그 동안 NTC를 주장하는 핵심 6개국은 WTO 농산물협상의
본격적인 협상을 앞두고 지지세력을 확대함으로서 협상력을 극대화시킨다는 차원에서
입장이 유사한 개도국들의 동조를 이끌어 내기 위해 설득작업을 펼쳐왔다. 이러한
설득작업의 일환으로 2000년 7월 노르웨이에서 개최된 NTC 콘퍼런스에는 구 동구권
국가, 소규모 도서국가, 그리고 대량의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개도국 등 무역자유화
과정에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40여개국, 90여명이 참석하였다. 콘퍼런스에서
발표되었던 자료가 이번 특별회의에 공동 제안서로 제출되었다.
특별회의에 제출된 NTC관련 제안서(문서번호; G/AG/NG/W/35)는
NTC 핵심 6개국이 작성했는데 주요 내용은 1) 농업의 특수성과 WTO에서 특별취급
필요성(스위스), 2) 농촌개발에 대한 농업의 기여(EU), 3) 식량안보와 국내 농업생산의
역할(한국, 일본), 4) 환경보전에 대한 농업의 기여(EU), 5) 개도국과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모리셔스), 6) 비교역적 기능을 반영하기 위한 신축적 정책의 필요성(노르웨이)
등에 관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스위스는 농업은 시장에서 그 가치가
평가되지 않는 공공재 또는 외부효과로서 농촌사회유지, 식량안보, 전통문화 보존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또한 농업은 인간생존과 직결되는 식량을
생산하며, 충분한 식량 및 식량안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내생산, 재고비축, 수입
등의 정책수단을 개별 국가의 사정을 고려하여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식량안보를
위한 개별 국가의 전략이 보호무역주의로 매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스위스는
과거 GATT 체제에서 농업은 그 특수성으로 인하여 특별취급을 받아왔으며 UR 협상에서도
농업에 대한 별도의 협정이 만들어졌음을 상기시켰다. 따라서 농업의 특수성과 비교역적
기능을 유지, 발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음을 감안하여 차기 협상에서도 농업에 대한
특별취급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EU는 많은 국가에서 농업은 농촌사회 구성의
바탕이 되고 경제활동의 중심이 되고 있으며, 경제가 발전된 선진국의 경우에도 농업이
GNP나 고용의 창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농촌개발에 매우
중요하다고 하였다. 농업의 경제적 중요성이 크지 않은 국가에서 농업은 특히 토지사용과
농지보전을 통해 농촌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농업은 주로 고용확대,
가공 및 유통분야 등에서 관련산업 육성, 한계지의 인구감소 방지, 환경 및 문화적
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농촌개발에 기여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농업이 농촌개발에
기여하는 정도는 국가마다 상이하기 때문에 정책도 국가마다 달라야 함을 강조하였다.
결론적으로 EU는 농촌개발을 위한 정책은 농업생산 및 관련 서비스를 육성함으로써
농업이 농촌지역의 지속가능개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장려되어야 하며, WTO 규정은
각 국이 농촌개발을 촉진하고 특히 정치 사회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책적 신축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음으로 한국과 일본은 식량안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국내생산이 필수적임을 지적하였다. 한국과 일본은 FAO 식량정상회의(1996년)의
식량안보 정의를 인용하고 식량안보의 구성요소로서 식량의 이용가능성, 식량에 대한
접근가능성, 식량공급의 안정성, 식품의 안전성/품질 및 식문화적 선호도와의 적합성
등을 강조하였다. 현재 세계의 식량안보 상황은 장단기적으로 매우 불확실함을 설명했는데,
우선 단기적으로는 세계 농산물시장의 독과점적 구조와 기상악화에 따른 주요 수출국들의
생산변동, 주요 수출국의 농산물재고량의 감소 현상, 수출국영무역과 곡물 메이저의
횡포 등을 식량안보의 저해요인으로 열거하였다. 중장기적으로는 개도국 인구증가와
소득증가로 인해 식량수요는 급격히 증가하는 반면 이용가능한 신규 농지의 제약과
물 부족, 지구온난화 등 기상이변 등에 따른 생산증대에는 여러 가지 제약요인이
있어 향후 식량안보의 상황은 매우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식량안보를 달성하는 수단에는 국내생산, 수입,
재고비축 등이 있으나 수입은 세계 농산물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으며, 재고비축제도는 그 효과가 단기에 그치므로 한계가 있어 불가피하게 일정량의
국내생산이 이루어져한다고 하였다. 특히 식량안보는 최소의 비용으로 달성되어야
하는데 식량자급률이 낮아질수록 소비자들이 느끼는 불안감(위험에 대비한 보험료)까지를
비용으로 간주했을 때 일정 수준의 국내생산이 이루어지는 선에서 최적 자급률이
산출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한편 국내생산은 식량안보 이외에 토양보전, 수자원함양,
환경보전, 농촌경제 유지 등 다원적기능을 제공한다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식량안보의
달성을 위해서 각 국이 특수한 농업여건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하며,
국내보조와 국경조치를 허용하여 일정 수준의 국내생산이 유지될 수 있도록 각 국에
신축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개도국의 식량안보를 위해서는 식량원조와
기술지원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EU는 농업의 환경보전에 대한 기여라는 제안에서
농업은 단순히 식량만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보전 및 지역사회 전통문화 유지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시장경제원리에만 의존할 수 없는 특성이 있다고
하였다. 또한 각 국의 농업구조, 기술발전 정도, 시장구조와 정부정책 등이 상이한
관계로 나라마다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은 공공재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시장경제에 의존할 수 없고 정부개입과
보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으로서는
환경보전을 위한 연구, 조사 및 홍보와 함께 강제적인 행정조치, 그리고 농민의 경제적
의사결정에 환경보전 및 문화유지 등의 편익을 감안하여 생산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 등이 있다고 하였다. 또한 각 국 정부는 농업인들이 사회에 농업의
다원적기능을 제공함으로써 발생하는 비용과 소득감소를 보상해야 하며, WTO내에서의
농업개혁은 이러한 NTC를 추구하는 정부정책에 신축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노르웨이는 농업협정 제20조에 명시된 대로 공정하고
시장지향적인 농산물 무역체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차기협상도 각 국의 다양한 농업형태가
공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국가마다 수요측면에서는
문화적, 경제적, 역사적 배경에 따라 상이하고, 생산측면에서도 지리, 자연여건에
따라 상이하므로 농업정책의 목표은 상이할 수밖에 없고 농업정책의 신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결론적으로 WTO 농업정책의 개혁과정에서 선진국, 개도국을 포함한 모든
회원국에게 정책의 수립에 신축성을 부여하여 각 국이 국내 농업생산을 통해 NTC를
적절히 구현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상과 같은 NTC 관련 제안서에 대해 대부분의 수입국들은
동조하는 입장이었고 수출국들은 상이한 입장을 보였다. 케언즈그룹 국가들은 농산물협상에서
NTC를 고려해야 하지만 NTC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은 목표지향적이고 투명해야 하며
무역을 왜곡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호주와 뉴질랜드는 이미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인데 구체적인 정책수단을 제시하지 않고 원론적인 논의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케언즈그룹의 일원인 인도네시아는 식량안보는 무역자유화만으로
달성될 수 없으므로 국내보조, 시장접근, 수출경쟁 분야에서 신축성이 부여되어 국내생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한편 미국은 농업이 특별한 역할을 하고 있고 향후 농업개혁
과정에서 NTC와 개도국우대를 고려하도록 한 점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하지만 무역을
왜곡하지 않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미국은 이미 포괄적인 농산물교역의
개혁이라는 제안서에서 NTC와 개도국우대를 위해 농가소득안정화 및 위험관리, 환경
및 자연자원 보호, 농촌개발 등을 포함한 보조조치를 추가로 개발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특히 식량안보를 위해서는 자유무역을 통한 경제성장, 기술혁신, 식량원조를
강조하였다.
결론적으로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관한 논의는 수출입국들간에
그의 중요성에 대해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원적 기능의 달성방법에 대해서는 의견 차를 보이고 있으며, 수입국들도 어떠한
정책이 다원적 기능의 달성을 위해 원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이 정립되어
있지 못한 상태이다. 따라서 향후 협상에서는 다원적 기능을 가급적 생산과 무역에
왜곡효과를 덜 초래하면서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국내보조, 시장접근,
수출경쟁 분야에서 모색하고 농업협정문에 반영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특히 한국이
중점을 두고 있는 식량안보를 위한 정책수단을 개발하여 협상에 제시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이다.
(이재옥 jaeoklee@krei.re.kr 국제농업연구실)
발행처
KREI
발간물 유형
KREI 논문
URI
http://repository.krei.re.kr/handle/2018.oak/17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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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간행물 > 세계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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