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량 탈농
통일
이후 동독지역에는 대량 탈농이 발생했다. 1989년 83만 4천명에 달하던 농업종사자 수가
1993년 17만 9천명으로 격감했다. 이후 탈농의 강도가 완화되어 1998년 14만 5천명으로
감소했다. 1993년 및 1998년의 농업종사자 수는 1989년 통일 당시 농업종사자의 21.5%
및 17.4%에 불과한 것으로서 동독농업이 통일로 인해 얼마나 급격한 구조변화의 와중에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농업종사자의
급격한 감축은 필연적으로 농업부문의 대량실업을 야기한다. 농업부문의 실업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만드는 것이 비농업부문의 고용능력 제한인데, 이는 동독지역의 대량실업이
농업부문 뿐 아니라 여타 산업부문에서도 동시에 발생하기 때문에 생겨났다. 동독지역의
실업률은 통일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1998년 19.5%에 이르게 되었다표 1.
표
1 독일의 실업률(단위:%)
연도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전체
7.3
8.5
9.8
10.6
10.4
11.5
12.7
12.3
11.7
동독지역
11.1
15.3
15.5
15.3
14.1
15.7
18.3
19.5
19.1
자료:http://www.bma.de/de/ministerium/statistiken/taschenbuch/stb2_10.htm;
Institut der Deutschen Wirtschaft, Wochenbericht,
각호
통상
비농업부문의 대량실업은 구동독체제하의 노동생산성이 서독에 비해 크게 낮아서 생산성
향상을 위한 대량해고가 불가피한 데 기인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농업부문의 대량탈농
및 이에 따른 실업은 이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다시 말해 농업부문의 대량 탈농은
서독농업의 생산성 수준 이상으로 진행되었는데, 이는 독일정부의 통합정책이 구동독의
토지소유관계 및 집단농장 체제의 척결을 생산성 향상에 앞서는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였기
때문이다.
동독지역의
경지 100ha당 단위노동력 크기는 1994년에 이미 인적회사의 경우 2.1, 법인의 경우 2.7로서,
서독지역의 경지 100ha당 평균 단위노동력 크기 5.1보다 월등히 낮았다. 이는 서독지역의
경우 1단위노동력당 경지면적이 약 20ha 정도인데 비해, 동독지역의 단위당 평균경지면적이
약 50ha 가까이 이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은 이후에도 그대로 지속되어 1998년에
서독지역의 단위노동력당 평균경지면적이 22.6ha임에 비해 동독지역은 51.3ha로 나타났다.
여기서
동독지역의 대량 탈농은 구동독 농업경영체의 생산성 향상보다 구체제 하의 토지소유관계와
농업경영형태를 과감히 그리고 신속하게 척결하려는 정책의지의 주된 산물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동독농업의 경우는 생산성 제고를 위해 경영조직과 소유관계의 변화를
추진한 것이 아니라, 토지의 사유화와 국영 및 집단농장의 민영화가 어떠한 대가를 치뤄서라도
반드시 성취해야 할 최우선 목표로 설정되었고, 이로 인해 대량 탈농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대량
탈농으로 인해 동독농촌에서 이제 일자리를 잃은 이웃 농민을 보는 것이 일상화되었고,
자신도 언제 일자리를 잃게 될 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남은 농민들은 생존의
위기를 느끼고, 살아남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경주해야 된다는 심리적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다. 이제 동독농민들은 이전보다 훨씬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리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불안해한다. 이것이 통일된 동독지역 농민의 현실이다.
2.
토지소유관계의 변화
독일의
분단 이후 구동독에서는 두 차례의 토지개혁이 실시되었다. 첫번째 토지개혁은
1945년 9월 동독공산당과 소련군정의 주도 하에 실시되었는데, 여기서는 100ha 이상 규모의
경작지(임야 포함)를 가진 토지소유주의 토지가 전부 무상으로 몰수되었다. 그리고 이전
나치당원 및 전범들의 토지는 소유규모에 상관없이 모두 몰수되었고, 국유지 또한 개혁대상농지에
포함되었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전체 대상농지는 320만 ha에 이르게 되는데, 이 중 220만
ha의 농지가 약 56만 명의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분배되고 나머지는 국가소유로 귀속되었다1 .
두번째
토지개혁은 1952년부터 실시된 집단농장화 작업이다. 1952년 7월 12일 제2차 공산당대회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농업생산조합(Landwirtschaftliche Produktionsgenossenschaft,
LPG) 결성을 의결함으로써 시작된 집단농장화 작업은 1960년 3월에 일차적 완결을 보게
되는데, 이 집단화의 주요내용은 농민들이 자신들의 농지를 농업생산조합(LPG)의 지분으로
내놓고 조합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조합지분인 농지는 더이상 농민들의 사적
소유물이 아니라 조합소유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집단화 과정에서 국가소유의 농지는
인민농장(Volkseigene Gter, VEG)이라 명명되는 국영농장으로 바뀌었는데, 이 국영농장은
국가소유 농장에 고용노동제를 도입한 형태였다.
통일후
동독지역 농지의 사유화는 구체제에서 실시된 첫번째 토지개혁은 (부분적으로)인정하고,
두번째 개혁인 집단농장화는 완전무효로 한다는 원칙 하에 실시되었다. 다시 말해 집단농장인
농업생산조합(LPG)에서는 집단농장화 될 때 농민들이 가지고 있던 지분을 되찾을 수 있게
하고, 지분을 찾은 농민이 제1차 토지개혁 이전의 원소유주에게는 토지를 반환하지 않고
금전적 보상을 하게 했다. 그런데 국영농장인 인민농장(VEG)의 토지는 반환받을 제1차
토지개혁 대상자가 구동독국가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독일정부가 중간에 나서서
원소유주에게 금전적 보상을 하고 그 토지를 농민들에게 단계별 임대 및 매각하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토지사유화의 결과 동독지역의 임차지 비율은 급격히 늘어났는데, 1991년 동독지역 전체
농업경지(LF) 중에서 임차지의 비율이 84.5%가 되었고 이 비율은 1999년 현재까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늘어난 상태에 있다표 2.
표
2 동독지역 임차농지의 규모와 비율(단위:천ha,
%)
구분
전체
농경지
자작지
임차지
1991
1994
1997
1999
5282.3
(100)
5436.0
(100)
5,558.8
(100)
5,585.9
(100)
820.6
(15.5)
549.1
(10.1)
494.4
(8.9)
570.3
(10.2)
4461.7
(84.5)
4886.9
(89.9)
5,064.4
(91.1)
5,015.6
(89.8)
자료:
BML, Agrarbericht der
Bundesregierung, 각 년도
통일후
농지에 대한 사유화를 실시하였지만, 임차지의 비율이 크게 증가한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첫째로 반환을 기본원칙으로 한 농업생산조합(LPG)의
사유화는 많은 농민들을 토지의 사적 소유주로 만들었지만, 50년대의 집단농장화에 참가했던
1세대들은 이미 너무 늙어 영농활동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고, 그들의 2세들은 이미
비농업부문에 취업해 있는 자들이 많아, 사유화된 토지의 많은 부분이 다시 임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사유화정책으로 나타난 대량탈농은 많은 토지소유주로 하여금
농지를 임대하게끔 강요했던 것이다.
둘째,
인민농장(VEG)의 사유화는 국유지를 민영화하는 절차를 밟게 되고, 여기서 택한 방식이
''3단계 모델''2 인데
현재 그 1단계의 장기임대차 계약이 완료되고 제2단계의 배상법(Entschdigungsgesetz)에
의한 매각이 진행 중에 있다. 이 결과 인민농장의 사유화에서도 대부분의 토지가 임대되게
되었다.
표
3 토지소유형태에 따른 동독지역 농업경영체 구성(단위:천호,
%)
구분
총농업경영체
자작농
자소작농
순소작농
1991
1997
1999
21.7
(100)
32.0
(100)
29.1
(100)
9.8
(45.2)
12.1
(37.8)
8.9
(30.6)
6.2
(28.5)
11.3
(35.3)
12.6
(43.3)
5.7
(26.3)
8.6
(26.9)
7.6
(26.1)
자료:
BML, Agrarbericht der
Bundesregierung, 각 년도
표
3에 나타난 토지소유형태별 농업경영체 구성을 보면, 1991년에 동독지역 총 농업경영체의
45.2% 그리고 1997년과 99년에 각각 37.8%, 30.6%가 자작농으로 되어 있다. 이처럼 임차지의
비율과 임차농의 구성에 큰 차이가 나는 이유는 자작농 범주에 속하는 농업경영체의 경우
거의 예외없이 사유화과정에서 생겨난 가족경영체임에 비해, 순소작농 및 자소작농의
경우 주된 부분이 농업생산조합(LPG)의 후계법인인 등록조합이나 유한회사들로 구성되어
있어 한 경영체의 종사자 수나 경지면적에 있어 가족경영체와 커다란 차이를 갖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92년에 농업생산조합(LPG) 및 인민농장(VEG)의 후계조합이나 법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농경지는 동독지역 총 농업경지(LF)의 73.4%가 되고, 이 경영체들에 속한 농업종사자
수가 전체 동독농업종사자 수의 68.4%를 차지했다3 .
그리고 표 4에 나타난 1998년도 농업경영체 구성도 경지보유규모와 농업경영형태
간의 이러한 관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
표
4 1998년 동독지역 농업경영체 현황
합계
27,664
(100)
5,595.1
(100)
202.3
자료:
BML(2000), Agrarbericht
der Bundesregierung 2000
3.
영농법인 중심의 농업경영체
구동독
집단농장의 사유화는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관계의 확립 뿐 아니라 농업경영체의 민영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경영체의 민영화에 있어서 독일(서독)정부가 당초 기대한 것은 가족경영체였다.
다시 말해 집단농장을 해체하고 동독 농민들로 하여금 경영체 형태를 자유롭게 선택하게
하면, 대부분의 동독농민들이 서독과 같은 가족농을 택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농업적응법(Landwirtschaftsanpassungs- gesetz, LAG)에 따른
조합농민들의 의사결정에서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농업생산조합(LPG)을 해체하여 가족경영체를
창업하기보다 기존의 공동경영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 경영조직 하에서 영농활동을 계속하길
원했다. 여기서 가장 선호된 경영조직이 법인형태의 협동조합에 해당하는 등록조합(eingetragene
Genossenschaft, eG)과 유한회사(GmbH)였다. 독일정부의 정책당국자들을 실망시키고 당황하게
만든 동독농민들의 이러한 의사결정이 과연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는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기에 속하지만,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실들은 동독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실증연구에서
밝혀지고 있다4 .
첫째,
대량의 탈농과 실업으로 이어지는 급격한 사회변화가 농민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이것이
다시 농민들로 하여금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한 것이다. 특히 새로운 시장경제체제
하에서는 생산과 판매가 전적으로 생산자 자신의 책임 하에 이루어지는데, 이것을 개인차원에서
감당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둘째,
체제변혁은 농민들의 가치관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다 주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농업부문의
미덕으로 간주되던 생산량 증가, 단보당 산출량 증가, 경지의 이용률 제고 등이 배척을
받고, 대신에 휴경과 생산량 할당 같은 생산제한조치가 새로운 미덕으로 떠오른다. 이것
또한 조합농민들의 의사결정이 소극적이고 수동적이 되게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셋째,
지난 40년 간의 집단농장체제 하에서의 공동체생활이 농민들의 의식 속에 내면화되었다는
점이다. 농장공동체 안에 형성된 상호간의 강한 연대의식이 농민들로 하여금 기꺼이
공동체에서 일하고 싶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내면화된 공동체 의식이 장래의 영농활동도
협업이나 공동체 형태 하에서 보다 잘 영위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이다.
농업생산조합(LPG)의
민영화가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자, 독일정부는 농업적응법(LAG)의 개정에 착수하여
가족경영체를 창업하는 농민들을 우대하고 법인 형태의 경영체를 택하는 농민들에게 상대적
불이익을 주는 조치를 취했다. 1991년 7월에 개정된 농업적응법(LAG)은 이전 법과 달리
농업생산조합(LPG) 내에서 토지출연자의 위치를 다른 생산요소(노동) 출연자에 비해 크게
강화시켰다. 이전 법에서는 농업생산조합 내의 의사결정이 조합총회의 다수결에 의해서만
이루어졌으나, 이제는 총회의 다수결 외에 토지 및 생산수단 출연자의 다수결이 또 하나의
중요한 의사결정 수단이 되게 되었다. 그리고 조합탈퇴자에게 출연한 토지와 자산의 반환
외에 추가적 보상이 이루어지게 했다.
뿐만
아니라 독일정부는 구동독체제에서 유래한 집단농장의 부채, 즉 구(舊)부채(Altschulden)를
농업생산조합의 후계법인들의 부채로 만들고 조합탈퇴자는 채무로부터 면제시켰다. 이에
따라 조합을 탈퇴해 가족농이 되거나 인적 회사를 구성한 자들은 상대적 이득을 보고,
조합후계법인들은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치의 결과 조합에서 탈퇴하는 농가가 상당히 늘어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독지역의
농업경영체는 여전히 영농법인(조합) 중심의 경영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앞의 표
4에 나타난 것처럼 1998년에 영농법인이 보유하고 있는 농업경지가 전체의 54.3%를
차지하고 있고, 법인에 속한 단위노동력이 전체의 68.6%에 해당하고 있다표 5.
표
5 1998년 농업경영체별 노동력 분포
구분
경영체수(%)
평균단위노동력
단위노동력(%)
개별농가
인적회사
법인
21,723(78.5)
2,980(10.8)
2,901(10.5)
1.7
3.3
35.2
36,929.1(24.8)
9,834.0(6.6)
102,115.2(68.6)
자료:BML(2000),
Agrarbericht der Bundesregierung
2000; BML(2000a), Land- und Forstwirtschaft in Deutschland - Daten und Fakten.
4.
동독지역 주민들의 가치관
한
사회의 현실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상적으로 드러난 사실 이외에 그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과 가치관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통일후 동독사회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분석이 필요하다. 다음의 내용들은 1995년에 실시된 동서독 주민들의
의식조사 내용인데,5 이를 통해 독일의 국민들, 특히 동독주민들이
통일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가치관과 통일과정에서 변하게 된 의식 및 가치관의 일부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첫째는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태도에 관련한 것이다. 동독지역 주민들은 장벽이 무너진 직후에도
사회주의는 훌륭한 사상이며 다만 잘못 실행되었을 뿐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독지역 주민의 비율은 1995년 현재 거의 80%에 이를 정도로 증가했다. 그리고
서독지역 주민들의 46%도 사회주의에 대해 현실에서 잘못 실행되었지만 훌륭한 이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동독지역 주민들의 35%는 구동독(DDR)이 단점보다는 장점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의견이고, 또 다른 35%는 이러한 의견에 부분적으로 동의하며, 단지 28%만 이
의견에 반대하고 있다.
둘째는
민주주의를 최고의 국가형태로 보는 태도에 대한 변화이다. 1991년에 구동독 주민들의
97%가 민주주의는 가장 좋은 국가형태라는 생각을 가졌으나 이러한 의견이 1995년 현재
86%로 감소했다.
동독지역
주민들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서로 음의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여기는 반면, 서독지역
주민들은 두 가지가 서로 양의 상관관계에 있다고 본다. 동독지역 주민들은 비교적 강하게
민주주의와 사회보장제도의 연관성을 상정하는 반면, 서독지역은 이 둘의 관계를 그렇게
밀접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시장경제와 사회보장을 대립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서독지역보다 동독지역에서 월등히 높게 나타난다.
(김수석
soosuk@krei.re.kr 농산업경제연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