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낙농산업의 발전과정

저자
김정섭
출판년도
2002-08-20
목차
낙농은 네덜란드 농업에서가장 중요한 생산부문 중 하나이다. 지난 40년 간은 네덜란드 낙농부문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던 시기이다. 비록 1984년 이후 EU 낙농정책의변화에 의해 정체되기는 했지만, 최근 40년 동안 네덜란드에서의 우유생산량은 크게 증가했다. 특히 1985년까지 낙농 경영체의 수는 급격히줄어들었지만 시간당 우유생산량과 단위 초지면적 당 우유생산량이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발전은 기술적 변화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한편, 그러한기술적 변화는 경제적 환경, 제도, 시장조건의 변화라는 새로운 배경에 대한 대응노력으로 파악할 수 있다.1960년대 전반에있었던 네덜란드 낙농부문의 주요 기술적 변화로는 착유기와 트랙터의 대대적인 도입을 들 수 있다. 착유기를 도입함으로써 단위노동력당 착유가능 젖소수가 증가했고, 이는 노동비용 감소로 이어졌다. 이 시기에는 또한 인공수정이 도입되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기는 낙농전문화의 시기라 할 수있다. 네덜란드는 착유기, 착유장, 우유수송을 위한 파이프라인 등에 대해 투자했고 많은 낙농경영체들이 전문화된 낙농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젖소를사육하는 동시에 여타 작물을 겸하여 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경종농업을 중단하고 전업화된 낙농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였다.1970년대는 칸막이를설치하여 젖소들을 분리시키는 신형 축사와 우유 냉장탱크가 도입되어 우유생산규모 확대가 더욱 촉진된 시기였다. EU는 보조금 정책을 통해 그와같은 규모화를 장려했다. 우유냉장탱크가 도입됨으로써 낙농가로부터 우유처리공장까지 기존에는 캔(can)에 담아 운송하던 것을 탱크에 담아운송함으로써 우유 수집비용이 절감되었다.우유처리업체들이우유냉장탱크 도입을 촉진했는데, 수집비용이 절감된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시기에는 사료와 관련하여 중요한 변화가 두 가지있었다. 첫째는 건초 생산이 엔실리지 생산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노동비용을 감소시키고 젖소 사료급여의 질을 개선시키는 계기가되었다. 둘째는 사료용 옥수수 재배와 옥수수 엔실리지 생산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1980년대 들어서는EU의 우유 쿼터제가 실시되었다. 쿼터제 실시 이후 네덜란드 낙농부문의 초점은 ‘생산증대’에서 ‘비용절감’으로 이동했다. 한편, 이 시기에는우유와 쇠고기 생산 둘 다를 목적으로 하는 교잡을 위해 인공수정을 하던 경향이 미국에서 수입된 소의 정액을 교잡하여 높은 수준의 우유생산능력을지니는 젖소 교잡으로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개별 젖소들의 최적화된 우유생산을 위해 적절한 수준의 사료 급여를 결정하기 위한 컴퓨터 기술이도입되었다. 그리고 배아이식기술 도입으로 다량의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들의 숫자가 증가했다.1990년대 들어네덜란드 낙농부문에서는 환경문제가 더욱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낙농은 농촌지역의 주된 환경오염원 중 하나였다. 오염을 줄이기 위한 많은규제조치들이 실시되었고, 그 결과 대기 및 수질 오염을 감소시키고 축산분뇨를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많은 신기술들이 도입되었다.1990년대의 또 한가지 중요한 사건은 착유 로봇의 도입이다. 1990년대 말을 기준으로 유럽 전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500 대의 착유 로봇 중절반 정도가 네덜란드에서 사용된다. 착유 로봇은 노동비용 절감에 기여하고 젖소의 위생에 도움이 되어 그 활용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지금까지 간략하게 살펴본것처럼 네덜란드 낙농은 경제적 환경, 제도, 시장 조건 등의 여러 상황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유제품 수입개방과 우유 과잉공급이라는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나라 낙농부문 또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절실한 실정이다.Agroinfo는 선진화된 낙농을 자랑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낙농부문 발전과정에 대해 소개하고 작은 참고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이하의 글은네덜란드 농업경제연구원(Agricultural Economics Research Institute, LEI)의 자료를 요약 정리한 것이다.1. 서론네덜란드에서는 노동력과토지의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농업부문 전반에 걸쳐 생산체계들이 집약적인 스타일을 이루고 있다. 다른 국가들에 대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토지생산성과 노동생산성이 높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경제성장과 더불어 네덜란드의 토지 및 노동 비용은 점점 더 상승하고 있다. 따라서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생산성을 지속적으로 증대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꼈던 네덜란드 낙농 경영체들은 지속적인 신기술 도입을 통해 그러한 생산성증대를 이루어왔다.현재, 네덜란드의 초지에투입되고 있는 질소질 비료의 양은 ha 당 300kg 정도이다. 젖소 1두 당 우유생산량은 7500kg이며, 노동자 1명이 현대화된하우징시스템과 자동착유 설비를 활용하여 50두 이상의 젖소를 관리할 수 있다. 그리고 야외작업들 중 일부는 계약을 통해 농장 외부에 아웃소싱하는 낙농경영체들이 증가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일반적인 기후조건으로 볼 때 낙농을 위한 사료작물로 가장 적합한 것은 화본과 목초류와 옥수수이다.질소 비료의 가격이 싼 탓에 알팔파 등과 같은 콩과 사료작물은 집약적인 네덜란드 낙농체계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콩과 사료작물이 잘 재배되지않는데에는 농장관리체계가 매우 복잡한 것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네덜란드에서 젖소들은 목초나 엔실리지 외에도 연간 2200kg 정도의농후사료를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의 모든 농장들이 구조물에 설치된 착유설비와 연동하는 칸막이형 축사를 사용한다. 이러한 시설은 노동투입을줄이고 기계화 및 관리가 용이하며 가축위생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장점을 지닌다.2. 통계로 본 네덜란드낙농(1960-2000)여기에서는 1960년부터2000년까지의 시기 동안 이루어졌던 네덜란드 낙농부문의 변화와 발전에 대해 다양한 지표들을 근거로 살펴본다. 활용된 자료들은 네덜란드중앙통계국(the Central Bureau of Statistice, CBS)과 네덜란드농업경제연구원(LEI)의 농장회계 데이터네트워크(the Farm Accountancy Data Network, FADN)로부터 얻은 것이다.2000년 현재네덜란드의 젖소 사육두수는 1995년 초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1995년부터 2000년 사이에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유의해야한다. 1984년까지 네덜란드의 젖소 사육두수는 매년 증가하여 1984년의 젖소 사육두수는 1950년대 초반에 비해 거의 70% 정도나 증가한상태였다. 그러던 것이 1984년 이후로는 매년 사육두수가 감소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주로 EU 회원국들에게 부과된 우유 쿼터제 때문에생겨난 것이다. 쿼터제의 도입은 1980년대 중반 유럽공동체에서의 우유 과잉 공급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쿼터제가 도입될 당시네덜란드에 배당된 쿼터로 보아 네덜란드의 우유생산은 감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1984년 이후로 네덜란드의 우유 쿼터 할당량은 수차례에 걸쳐 감축되었다. 그 결과 네덜란드에서의 우유 생산량은 증가추세에서 감소추세로 역전되기에 이른 것이다. 1984년의 우유생산량은1960년도의 두 배에 달했으나, 그 이후로는 16% 정도 감소했다.1960년 이후로사료작물 재배면적의 변화는 별로 없었다. 1985년까지는 거의 안정적으로 유지되다가 그 이후로 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사료작물은젖소뿐만 아니라 비육우나 양에게도 사용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네덜란드의 초지 는 대부분 옥수수밭으로 바뀌었다.한편, 젖소사육 농가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1960년에는 18만 5000여 농가들이 젖소를 사육했지만, 2000년에 들어서는 2만 9000농가로 그 수가 크게줄어들었다. 많은 농가들이 낙농을 포기하는 상황에서, 살아남은 낙농가들 중 상당수가 전업화의 길을 걸었다. 현재 젖소 사육농가의 대부분은 낙농전업농가들이다.따라서 낙농 경영체당젖소 사육두수는 1960년도에는 9두였던 것이 2000년도에는 51두로 크게 증가한 것이다. 경영체당 젖소 사육두수는 1980년대 후반에만감소추세를 보였는데 이는 우유쿼터제 도입으로 인한 것이었다. 젖소 1두 당 우유생산량은 특히 1970년 이후에 비약적으로 증가했다.1990년에는 젖소 1두당 우유생산량이 1970년도에 비해 5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낙농 경영체당 젖소사육두수가 증가하고 젖소 1두당 우유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낙농 경영체당 우유생산량도 지속적인 증가를 보였다. 이러한 모든 발전은 기술개발과 경제환경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있었기에 가능했다.지난 수십년간 네덜란드의낙농 경영체수만 감소한 것이 아니라 경영체당 노동투입량 또한 감소했다. FADN의 자료를 근거로 살펴볼 때 전문화된 낙농 경영체에서는투입노동시간이 1965년에는 연간 5,350시간이던 것이 1999년에는 3,900시간으로 25% 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 동안우유생산량이 증가했기 때문에 투입노동시간 대비 우유생산량으로 노동생산성을 측정해보면 비약적인 증가를 한 것으로 나타난다.1965년도에100kg의 우유를 생산하는 데에는 72시간의 노동이 필요했지만 1999년도에는 9.5시간의 노동이 투입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80년대와90년대에 들어서는 이러한 지표로 본 노동생산성은 60년대와 70년대에 비교할 때 그다지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FADN의 자료를 토대로볼 때, 낙농전업농가의 경영규모 또한 증가했다. 1965년에는 낙농전업농가의 평균 초지면적이 14ha였으나 1999년에는 거의 150% 증가하여35ha에 이르렀다. 이러한 초지들의 대부분에서는 화본과 목초류나 옥수수가 재배된다. 초지면적당 우유생산량은 1965년에서 1980년 사이에거의 두배 증가했다.이는 부분적으로는 더욱많은 비료를 시용하고 농후사료를 급여한 결과이기도 하다. 쿼터제가 도입된 이후 우유 생산이 다소 감소하기는 했으나 1999년에는 1985년과거의 대등한 수준까지 이르렀다. 토지생산성과 노동생산성의 증대는 부분적으로는 토지와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한 대체를측정할 수 있는 한가지 지표로 낙농 경영체당 기계설비 비용을 들 수 있다.1999년에는 그러한비용이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여 계산할 경우 1965년도의 수치보다 거의 6배에 달한다. 그러나 생산되는 우유 1kg당 기계설비 비용을 따져보면,1999년도의 수치는 1965년도의 그것에 비해 겨우 5% 높게 나타날 뿐이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네덜란드 낙농부문의 토지생산성과노동생산성은 증가했지만 전체적인 생산요소 생산성은 그다지 증가하지 못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3. 우유생산량의 급속한증가(1960-1980)1960년에서 1980년동안은 낙농경영체당 우유생산량이 빠른 속도로 증가한 시기이다. 이러한 생산량 증가에는 노동생산성의 급격한 증대가 동반했다. 이러한 발전은 대체로생산기술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와 같은 기술의 발전은 네덜란드 정부의 농업정책과 나중에는 유럽 공동체의 공동농업정책에의해 촉진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네덜란드 농업개발 및 재조직 기금(the Dutch AgriculturalDevelopment and Regorganization Fund)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한편으로는 낙농을포기하는 농가들을 위한 보조금 지급과 더불어 다른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낙농에 종사하는 농가들의 경영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보조금이 지급되었다.그러한 보조금 정책들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가 1972년에서 1985년 사이에 실시되었던 이자보조금이다. 이것은 EU 지침(EU Guidance72/159)에 따라 실시된 것으로 발전가능성이 있는 농업경영체의 현대화를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융자지원금의 이자를 보조해주는것으로, Europe Orientation and Guarantee Fund로부터 이자의 25% 정도를 보상해주었다.그 외에도 많은낙농경영체들이, 특히 젊은 농민들이 네덜란드 정보의 농업채무보증기금(Agricultural Loan Guarante Fund)을 활용했다. 이기금은 1951년에 마련된 것으로 수익전망이 불안정적인 농민들이 수익성이 확실한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기금은 농민이 채무상환이나 이자결제를 하기가 어려운 상황일 때 은행에 대해 지급보증을 해주었다. 1972년에서 1985년 사이에 사육두수를증가시킨 네덜란드 낙농경영체들 중 60% 정도가 이러한 지원정책의 수혜를 받았다.3.1. 착유기와 트랙터로의전환(1960-1965)이 시기 동안 네덜란드의낙농경영체들은 평균적으로 10 내지 15ha에 불과한 토지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젖소 1두당 연간 우유생산량은 약 4100kg 정도였다. 젖소들은전통적인 외양간에서 사육되었으며 겨울철에는 외양간 안에 가두어 길렀다. 수작업으로 착유하는 것이 가장 흔한 관행이었다. 노동자 1명이 10-15마리 정도의 젖소를 관리할 수 있었다. 착유기가 대대적으로 도입된 것은 바로 이때의 일이었다. 네덜란드에서 착유기가 처음 도입된 것은 그보다이전의 일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값싼 노동력 조건과 최초에 개발된 착유기가 안고 있는 기술적 문제점들로 인해 60년대 초반까지는 널리보급되지 못했다.1960년에서 1965년 사이에낙농 경영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착유기 개수는 3만 9000대에서 6만 3000대로 증가했다. 이 당시에는 착유장은 그다지 활용되지 않았다. 짜낸우유를 양동이에 담아 옮기는 것이 흔한 관행이었다. 젖소들을 매어두고 노동자가 개별 젖소들로부터 우유를 짜내어 양동이에 담아 모으는 것이일반적이었다. 우유를 짜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두개 혹은 세개의 양동이 분량의 우유를 짤 수 있었다.같은 시기에 거의 모든낙농 경영체들에 트랙터가 보급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마샬플랜에 의해 네덜란드의 대농과 기계회사들을 중심으로 트랙터가 도입되었다.60년대 초반에는 중농과 소농들 대부분이 트랙터를 도입하게 되었다.3.2. 낙농경영체 전문화를향하여(1965-1970)네덜란드 농업경제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이 시기 동안 낙농 경영체의 평균 경영규모는 약간 증가했다. 젖소 한 마리가 1년간 섭취하는 농후사료의 양은 평균900kg이었다. 이 시기 동안 네덜란드의 많은 농업경영체들이 한 가지의 농업활동에 매진하는 전문화(전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착유기나착유장에의 투자와 함께 많은 농민들이 전업화된 낙농경영을 시작하게 되었다. 착유기의 성능 또한 계속 향상되었다. 젖소로부터 캔까지 우유를운송하기 위한 파이프라인이 도입되었다. 초지에 투입되는 비료의 양 또한 같은 시기에 ha 당 175kg에서 230kg으로 증가했다.3.3. 현대화, 기계화, 인프라의개선(1971-1975)3.3.1. 하우징 시스템현대화이 시기 동안에 전통적인하우징 시스템에서 현대화된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거의 혁명적인 일들이 일어났다. 많은 낙농 경영체들이 착유장과 결합된 칸막이형 축사를 도입했다.칸막이형 축사 바닥에는 대부분 널조각이 깔려 있었다. 그 널조각 아래로 그리고 때로는 축사 전체 구조물 아래로 슬러리를 모아 저장할 수 있게되었다. 그와 동시에 거의 모든 낙농경영체들이 우유냉장탱크를 도입했다. 1970년부터 1975년 사이에 우유냉장탱크를 도입한 낙농 경영체 수는2만 5000개에서 4만 5000개로 증가했다.우유냉장탱크는 네덜란드에도입되기 이전에 잉글랜드와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1971년에서 1975년 사이에 이루어진 우유냉장탱크 도입의배경에는 정부와 낙농산업부문의 장려시책이 있었다. 특히 소농들에게는 우유탱크를 설치할 수 있도록 보조금이 지급되었다. 이로써 캔에 우유를 담아경영체에서 처리공장까지 운송하던 우유수집 시스템이 탱크에 담아 운송하는 수집 시스템으로 변화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우유탱크는 낙농경영체들의 기계화에 있어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사례라 할 수 있다.3.3.2. 조사료 생산기계화1960년대에는 대부분의낙농 경영체들이 초지로부터 건초를 생산했다. 건초는 겨울철 동안 젖소에게 급여되었다. 건초를 생산하고 저장하고 급여하는 것은 매우 노동집약적인일이었다. 1960년대 중반에 이루어진 연구들은 주로 건초를 엔실리지 형태로 저장하는 방법에 대해 초점을 맞추었다. 엔실리지로 가공된 초본과식물들을 이용하는 것은 건기가 그다지 길지 않은 네덜란드 기후 조건에서 커다란 장점을 지니는 것이었다. 1970년에서 1980년 사이에 젖소가섭취하는 사료 중 건초가 차지하는 비중은 70%에서 20%로 줄어들었다.그와 동시에 풀을 베고말리는 작업 또한 기계화되었다. 건초대신 엔실리지로 전환하는 것은 낙농경영의 구조조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엔실리지를 사용함으로써 품질이 좋은어린 초본과 식물들(건중량당 에너지 함유량이 높음)을 수확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해에 걸쳐 엔실리지 가공 방법이 개량되었다. 풀을 건조하는데드는 시간은 하루 내지 이틀 정도로 대폭 감소되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인데, 비로 인해 사료 품질이 떨어지는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게되었기 때문이다.이러한 모든 과정에는낙농 경영체에 많은 기계화 설비의 도입이 필요했다. 기계화의 진전 정도는 낙농 경영체가 보유한 트랙터와 노동력을 마력(HP)으로 환산한지표로부터 파악할 수 있다. 1965년에는 기계화의 수준이 매우 낮았다. 낙농경영체들은 평균적으로 연간 7만 5000kg의 우유를 생산하고있었다. 여기에는 5000시간 이상의 노동력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경영체에서는 20-30마력의 트랙터가 사용되고 있었다. 전체 기계설비의 가치는약 7만 2000 f(1999년 기준 환산가격) 정도였다.오늘날 네덜란드의 낙농경영체들은 평균적으로 연간 41만 5000kg의 우유를 생산한다. 여기에 소요되는 노동력은 4000시간 이하이다. 기계화는 경영체당42만 5000f 정도의 가치로까지 진전되었으며 경영체에서 사용되는 트랙터들의 동력은 평균 172마력에 이르고 있다. 이는 매우 큰 변화인것처럼 보이지만, 우유 100kg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기계화 설비 비용은 그다지 크게 변한 것이 아니다. 우유 100kg 당 투입노동력은 지난35년간 90% 정도 줄어들었다.3.3.3. 인프라의개선1970년대에 초지활용을극대화시키기 위해 이루어진 또 하나의 발전은 토지를 구획하고 재할당한 것이다. 네덜란드의 대부분의 농민들이 이른바ruilverkavelingen 사업에 참여했다. 이 사업은 관개배수와 접근성을 개선하고 때로는 농장 전체를 다른 곳에 이주시키기도 했다.정부는 매우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여 이 사업을 지원했으며 토지 규모화를 감독했다.3.4. 우유탱크와 옥수수의도입(1976-1980)3.4.1. 캔에서우유탱크로이 기간 동안 네덜란드낙농산업은 농장에서 우유탱크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전환했다. 낙농산업은 우유탱크 사용을 보편화시킴으로써 모든 우유를 탱크에 저장하여운송하는 체계로 완전하게 전환했던 것이다.3.4.2. 옥수수의 비중증대육종사업의 성과로네덜란드 기후에 적합한 옥수수들이 나타났다. 옥수수 엔실리지를 젖소에게 급여하는 것은 농민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일이었는데, 옥수수의 단백질함량은 화본과 목초류들보다 훨씬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옥수수는 사료 급여의 최적화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옥수수가비록 비용이 많이 드는 작물이기는 했지만 네덜란드의 사질토양에서는 특히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네덜란드의 경우 전체초지 및 사료작물 재배면적에서 옥수수 재배가 이루어지는 면적 비중은 1960년대의 2%에서 1990년대 말에는 16%로까지 증가했다. 지금은사질토양인 초지를 갖고 있는 낙농경영체들의 경우 겨울철 사료급여의 50% 정도가 옥수수 엔실리지로이루어진다4. 품질, 환경,노동생산성(1980-2000)최근 20년간 네덜란드낙농부문의 발전은 그 이전 시기의 발전과는 내용이 사뭇 다른 것들이다. 이 시기 동안에도 지속적으로 요청되었던 것은 노동생산성 증대였다. 그러나노동생산성 증대를 실현해야 하는 배경이 변화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가장 중요한 것은 EU가도입한 정책수단의 결과 더 이상 우유생산을 증대시키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회적 관심사로서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게대두되었다. 새로운 법률들이 입안되어 환경을 보호하고 오염을 저감시키도록 규제조치들이 이루어졌다. 낙농부문의 경우 대기 및 수질 오염에 대한규제가 특히 중요했다.낙농 경영체들은환경기준을 준수해야만 했는데, 여기에는 구체적인 투자의 형태로 투입되는 비용의 증대가 수반되었다. 예를 들어 규정에 명시된 합당한 방식으로축분을 저장 처리하거나 그것들을 토양에 살포하는 데에 새로운 설비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규제들은 또한 EU의 공동농업정책에 의해 더욱영향을 받고 있다.그리고 더욱 더 많은농민들이 지속가능한 생산(유기농 또는 생태 상품)을 통해 자신들의 상품을 시장차별화하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그러한 상품들이 더욱 높은 가격을받기도 한다. 네덜란드 정부는 최근 들어서 그러한 발전을 더욱 장려하고 있다.4.1. 우유쿼터제와인공수정(1980-1985)4.1.1. 우유생산 쿼터제 :양에서 질로1970년대에유럽공동체에서의 우유생산은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우유자급률은 100%를 상회하게 되었다. 한편 우유를 유럽공동체 역외로 수출할 수 있는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설령 수출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경우에는 높은 수준의 수출보조금이 들게 마련이었다. 분유와 버터 재고량은 태산같이쌓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1983년에 유럽 공동체의 모든 회원국들에 대해 우유 과잉생산을 막기 위해 생산쿼터제가 실시되었다. 각 회원국들과회원국 내 개별 낙농가들은 우유 생산 쿼터를 할당받았다. 회원국별 우유생산 쿼터와 낙농경영체별 우유생산 쿼터는 쿼터제 도입 이전 수십년간의우유생산 기록을 근거로 결정되었다.문제의 핵심은 생산확대가아니라 비용절감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시기에 우유 단위생산량당 직접 비용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젖소 1두 당 연간 우유생산량이1985년에는 5700kg이던 것이 1999년에는 7530kg으로까지 증가했다. 한편 젖소 1두당 농후사료 소비량은 큰 변화 없이 비슷한 수준에머물렀다.4.1.2. 미국산 젖소의도입제2차 세계대전 이후젖소의 인공수정은 구조화된 방식으로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 1983년에는 임신한 젖소의 75% 이상이 인공수정을 통한 것이었다. 인공수정은농민들로 하여금 세계 전역의 젖소 정액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한편, 미국에서 젖소 육종은 보다 많은 우유생산만을 목표로 한것이었다. 네덜란드에서는 대부분의 농민들이 우유 생산과 고기 생산을 둘 다 염두에 둔 젖소 육종에 매달리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회피하기도했지만, 그래도 많은 농민들이 이 시기에 미국에서 수입된 젖소 정액을 이용하여 홀스타인종과 프리지안종을 교잡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우유생산량은 훨씬 증가하게 되었지만 쇠고기 생산은 감소했다.그와 동시에 개별젖소들을 식별하여 관리하는 방법이 도입되었다. 개별 젖소들마다 우유생산량이 기록되었으며 그 정보는 해당 젖소에 급여되는 농후사료량을 결정하는데에 활용되었다. 이러한 방식의 농장관리를 위해 컴퓨터가 낙농경영체에 도입되었으며, 이는 모든 젖소들이 최적 수준의 우유 생산에 도달하는데필요한 사료 급여량을 적정 수준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왔다.4.2. 새로운 방식의 젖소육종(1986-1990)이 시기 동안에는홀스타인-프리지안 교잡종의 도입으로 인해 젖소 1두당 연간 우유생산량이 평균 6,575kg 까지 증가했다. 젖소 육종 분야에서 새로운 발전이이루어졌는데 그것은 배아 이식기술의 도입이었다. 이 기술은 높은 수준의 우유생산능력을 갖춘 한 마리의 어미 젖소로부터 그러한 유전형질을 이어받은50 내지 60 마리의 새끼 젖소의 생산을 가능케 했다.4.3. 새로운 도전, 환경오염 감소의필요성(1990-1995)젖소를 사육하는 것은여러 가지 방식으로 환경오염에 기여한다. 젖소를 축사에 가두어 사육하는 동안 축사내 축분과 토양에 살포한 축분으로부터 암모니아가 발생하여 대기오염을 일으킨다. 그리고 질소 성분 또한 지하로 스며들어 수질오염을 불러일으키는데 이것은 네덜란드에서 사회문제가 되었다. 특히 음용수에서발견되는 질소질 성분은 세계보건기구(WHO)의 허용기준치를 초과할 경우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었다.이러한 이유로 인해 EU수준에서 마련된 질소 규제 지침(the Nitrate Directive)이 1990년대에 발효되어 농지에 축분을 시용하는 것에 대해 제한하기시작했다. 낙농으로 인한 환경오염의 마지막 사례로는 인 성분이 환경오염을 일으킬 수 있음을 들 수 있다.1990년대에는 네덜란드국내에서도 많은 규제를 통해 그러한 종류의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축분저장 시설에 지붕을 설치함으로써 암모니아방출을 감소시켜야만 했다. 토양에 축분을 살포하는 것은 일정수준의 최대치 내에서만 허용되었으며 가을철이나 초겨울에 초지에 슬러리를 살포하는 것은금지되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축분을 표토면에 살포하는 것은 표토 내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대체되었다.4.4. 착유 로봇의도입(1995-2000)1999년 이후 대부분의낙농경영체들은 농장에서의 연간 질소균형을 맞추어야 했다. 모든 질소 및 인 성분 투입량과 산출량이 기록되었다. 네덜란드 정부는 현재 수년 내로기준을 더욱 강화시킴으로써 질소 손실을 줄이려 계획중이다. 기준을 초과하는 낙농경영주들에게는 범칙금이 부과될 것으로 보인다.20세기의 끝 무렵인2000년경에는 유럽에서 약 500대의 착유로봇이 이용되고 있었다. 그 가운데 250대는 네덜란드에서 이용되었다. 이러한 네덜란드의 첨단기술발전은 현재 낙농에 있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가고 있다. 착유작업의 기계화는 노동력을 크게 절감시킬 뿐만 아니라 우유 생산량 증가에 비례하여같이 증가하는 전염병 발생 리스크를 줄이는 효과를 갖고 있다.자료:The Netherlands,Agricultural Economics Research Institute에서(김정섭jngspkim@terrami.org 02-2205-0729 지역아카데미)주: 네덜란드 낙농의 발전과정(표 1), 네덜란드 낙농규모의 변화(표 2), 전업 낙농경영체들에서의 기계화 진행정도(표 3), 겨울철 젖소 사료 급여 내용(표 4), 전문화된 낙농경영체들의 우유생산량 증대(표 5), 낙농 경영체당 평균 우유생산량(그림1), 단위 노동투입 대비 우유생산량(그림 2), 사료작물 재배면적 1ha 당 우유생산량(그림 3), 사료 작물 중 옥수수가 차지하는 비중(그림4)는 원문 참조
발행처
KREI
발간물 유형
KREI 논문
URI
http://repository.krei.re.kr/handle/2018.oak/17733
Appears in Collections:
정기간행물 > 세계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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